주일설교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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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빛이시다(요일 1:5~7)
우리는 이런저런 착각을 하면서 세상을 삽니다. 착각 가운데서 살면 본인은 편한데 주위 사람은 불편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과 관계 가운데서는 착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엄중한 결과가 오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가질 수 있는 착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는 착각입니다. 요한이 이 편지를 썼을 때는 영지주의자들을 염두에 두고 썼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구분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것은 영원한 것이고 물질적인 것은 순간적인 것이고, 영적인 것은 거룩한 것이고 물질적인 것은 속된 것이고 나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21세기에도 현대판 영지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영적인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생활은 교회생활이고 사회생활은 사회생활이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한 종류는 구원의 확신이 있다는 분들입니다. 어떤 분은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이전의 삶과 똑같습니다. 계속 어둠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착각입니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빛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착각 가운데서 빠져 있을 때는 기쁨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이 부담스럽고 짐스럽기만 합니다. 이런 착각 가운데서 빠져나올 수 있는 해답은 빛 가운데 사는 겁니다. 노출된 삶을 사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3년, 5년이 가도 여전히 사고나 성격이나 생활에 전혀 변화가 없으면 심각하게 생각을 해봐야 됩니다. 내가 정말 구원 받았는가?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영접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어둠이 싫어지고 빛에 걷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빛에 걸었을 때 기쁨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점점 생활이 변하는 겁니다.
옛날에는 섬김만 받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면 자신이 좀 얌체처럼 느껴지고 나도 남을 좀 섬겨야지 해서 누가 아프다고 해서 국이라도 끓여다 주면 기분이 좋은 겁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변했는지 안변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자기만 압니다. 그래서 변화라는 것은 ‘가끔, 어딘가, 그럭저럭’ 이 단어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가끔 변화가 있습니다. 또한 어딘가 변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럭저럭, 그런대로 변화가 있습니다. 어떤 변화는 우리가 감지하기 어렵습니다.
정말 내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으면 예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의로운 삶을 살지 않을 수가 없고, 내가 계속 어두움 속에 살면서 '나는 구원 받았다.' 이건 아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소원을 주시는 것만큼만 변해 가면서 차차 변하는 겁니다.
내 삶의 부정적인 면, 내 삶의 추한 면, 내 성격의 잘못된 것을 씻음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빛에 노출시켜야 합니다. 첫째는 내가 하나님과 사귐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세 번째는 빛 가운데 사는 겁니다.
우리가 정말 치료 받기 위하여서는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일연합예배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삶 공부도 기회를 만들어서 수강하고 목장에도 지속적으로 참석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자꾸만 나를 집어넣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다음부터 나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내 삶의 부정적인 면, 내 삶의 추한 면, 내 성격의 잘못된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십니다. 성경을 읽는 가운데서 내가 이런 모습이구나! 설교 듣는 가운데서 오늘은 목사님이 정말 나보고 말씀하시는구나!
자기 자신이 노출되는 것이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자기 모습이 노출되는 것이 싫은데 우리가 노출되기를 기도하는 것은 내가 노출이 되면 사귐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 그대로 내 자신을 노출시켰을 때 사귐이 생깁니다. 그다음부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쁨이 생깁니다. 자기를 노출시키기 전까지는 이런 기쁨을 맛보지 못합니다. 이런 사귐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나는 사귐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착각입니다.
또 이웃 간에 참된 사귐도 서로 자신을 정직하게 노출했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목장에서 ‘여러분을 진솔하게 노출시키십시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그래서 그렇습니다.
목장 모임에서도 좋은 얘기, 은혜로운 얘기만 하면 사귐이 없습니다. 내 삶의 어두운 면, 내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 내 성격의 까칠한 면, 내 삶의 나쁜 습관을 노출시킬 때 참된 사귐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귐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어떤 때는 강압적으로 역사하시기도 합니다. 목원하고 목원끼리 꽝 부딪치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고집스런 면, 추한 면, 악한 면이 확 드러나게 만드시는 겁니다. 이것을 보고도 용납하고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때 참된 사귐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래서 목장에서 그런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허락하시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 ‘목자를 잘못 만났나, 목장을 한 번 바꿔봐.’ 이러는 동안 해결이 안됩니다.
사귐이 없으면서 사귐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다들 노출되는 삶을 사셔서 하나님의 따뜻한 사귐을 맛보고 이웃과의 사귐이 진실해지는 축복을 맛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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