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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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라
우리는 크리스챤의 티를 내야 됩니다. 우리가 정말 크리스챤이다 하는 싸인은 성도들끼리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크리스챤의 티를 내려면 불신자를 목장으로 초청해서 ‘와서 우리 한번 봐라.’ 이 소리를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성도끼리 서로 사랑하되, 사랑하는 방법까지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롯유다와 베드로를 다루시는 모습 가운데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랑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배울 수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목요일 저녁에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함께 성만찬을 하셨습니다. 이제 몇 시간 있으면 가롯유다가 자기를 팔아먹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런 배반자 가롯유다에게 예수님 자신을 앉기는 이런 노출된 모습 가운데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노출시키는 사랑이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이 나를 이용해 먹을지도 모르고 나를 배반할지도 모르지만, 우리 자신을 노출시키는 이런 모습가운데서,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울 수가 있고, 참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원하시는 참된 사랑의 관계가 이루어지려면 먼저 자신을 노출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고 마음을 닫고 사는 관계 가운데서는 참된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사랑이 있을 때 ‘이 사람들은 다르구나! 정말 주님의 제자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의 제자다 하는 티를 내자면 내가 상처를 받을지 몰라도 자신을 노출시키는 이런 것을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노출시키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계속 되는 예수님의 사랑을 거부했던 가룻유다! 그는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그 지점을 통과하였습니다. 그래서 나가서 예수님을 파는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 예수님께서 또한 베드로를 다루시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주님을 위하여서는 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에, 조금 있다가 예수를 부인할 이런 베드로를 다루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용납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충동적이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 아셨습니다. 근데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용납해 주셨습니다.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두 가지 이유입니다.
① 첫째는, 베드로가 나중에 예수님을 부인한다 할지라도 이런 약속을 할 때는 진심이다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아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마음을 보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용납해주셨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②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보실 때 지금 변덕도 많고 의지력이 약한 베드로의 모습을 보지 아니하고, 나중에 베드로의 변해질 모습을 보셨기 때문에 용납해주셨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도 정말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기를 원하면 용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잘못했다고 할지라도, 한 번, 두 번, 세 번, 많은 잘못을 했어도, 와서 용서를 빌면 우리는 용서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은 세상 사람들은 하지를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친하지만 큰 실수 한 번만 있으면, 그 다음에는 관계가 끝이 납니다.
우리가 크리스챤이라고 하면 크리스챤의 티를 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고백의 종교입니다.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다 하는 것을 표시해야 합니다. 성도끼리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서 표시해야 한다.
나를 당장 배반할 가롯유다에게 자신을 노출시킨 예수님, 조금 있으면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할 베드로를 격려해 주었던 용납하시는 예수님! 우리는 이런 모습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모습을 보일 때에 안 믿는 사람들이 끌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안 믿는 사람들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 있으면 자기를 배반할 가롯유다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 있으면 자기를 부인할 베드로를 용납하고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어떤 면에서는 가롯유다 같은 이런 배반은 없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잊고 세상 길로 쫓아 나갔을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내가 궁하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께 매달리고 의지하다가, 일이 잘 되고 나면 입을 딱 닫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배신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도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셔야 한다.
우리는 베드로 같은 부인은 없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많은 약속을 하고는 지키지를 못합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여전히 우리와 같이 하시고 우리를 용납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이런 푸근한 하나님의 사랑을 즐기시고, 이런 푸근한 하나님의 사랑에 안식하시고, 이런 푸근한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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