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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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는 객관적으로 어느 편을 들지 아니하고 중립을 취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가 저주의 자리에 들어간 좋은 예입니다. 세상에 이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예배 때 고백하는 사도신경에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이 저주를 지난 2천년동안 기독교인들이 모인 데마다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체포되었을 때에 유대 지방에 총독으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판을 안 할 수는 없었고, 그러는 가운데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굉장히 애를 썼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나라는 로마 통치 밑에 있었는데, 종교적인 문제는 70명으로 구성된 공회에서 처리하고, 정치성 있는 문제나 특별히 사형에 해당하는 문제가 있을 때는 총독의 제가를 받아야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놔준다 하는 것은 편을 드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중립을 취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자기 이익과 자기 보존만이 유일한 관심사였습니다.
이런 사람 앞에서 예수님이 진리 이야기를 하자 우습게 들리는 겁니다. 그는 여전히 중립의 위치에 있으려고 하면서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애만 썼습니다. 그러나 빌라도의 약점을 본 유대인들이 허락하지를 않습니다.
‘죄라든가, 사탄이라든가, 세상에 대해서.’ 우리가 조금 약점을 보이고, 조금 양보를 보이면 죄나 사탄이나 세상이 끝까지 양보할 때까지 놓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유대들도 빌라도가 놔주려는 것을 알고 예수를 놓아주면 황제한테 반역을 하는 것이다며 공갈을 쳤습니다. 중립을 지켜보려고 애쓰다가 결국 코너에 몰린 빌라도가 최후에 작전을 짭니다.
설마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선택하지, 시저(황제)를 선택하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의 기대와는 달리 대제사장들이 ‘우리에게는 황제 폐하 밖에는 왕이 없다’고 선택을 한 것입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이 유대인들이 선택된 민족으로서의 운명이 끝나는 순간이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40년 후에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빌라도는 끝까지 중립을 지키려 하다가, 결국은 예수님을 넘겨서 십자가에 처형하는 저주의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성경에 다니엘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다니엘은 유대인으로서 페르시아 수상을 했습니다. 많은 적들이 다니엘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 황제 말고 다른 사람이나 다른 신에게 절을 하는 사람은 처형하는 황제의 법령을 내려졌습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천사가 사자 입을 막아주어서 다친 곳이 없이 살아났습니다. 다니엘은 편을 정했습니다. 하나님 쪽을 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다니엘을 살려주셨을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온 제국에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든 편을 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인 것이 분명하면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중립을 택하는 것은 자기는 비 진리를 택하는 것이고 악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 되신 예수님 놓고서 ‘모든 종교는 똑같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진리 되신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편을 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믿고 데는 많은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덮어놓고 믿어서는 안 되지만 모든 것을 다 알아서 믿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해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난 다음에 이해가 됩니다. 내가 체험하고 난 다음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난 다음에 체험이 주어집니다.
빌라도의 태도는 믿는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세상 살면서 신앙생활에도 성공하고 세상에서도 성공해 보려고 합니다. 그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신앙 양심이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실패할까봐, 그것을 놓지를 못하는 것은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중립이다 하는 것을 꼭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 양심이 괴로울 때는 편을 정해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든지 두 개를 다 해보려고 하려는 동안은 죄, 세상, 사탄은 우리들을 놔주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한번 거짓말을 하면 그 거짓말을 카버하기 위해서 또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거짓말 두 개를 카버하기 위해서 또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죄가 그렇습니다. 신앙 양심이 괴로운데 내가 타협을 하면 조그만 타협으로 끝나지가 않습니다. 그 다음에 조금 더 타협을 해야 됩니다. 끝내는 내가 신앙을 까먹을 수 있는 자리에까지 갈 수 있다는 위험이 따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초기에 편을 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나를 좀 더 큰 시험의 자리로, 나를 좀 더 멸망의 자리로 이끌어갈 거 같으면, 자꾸만 조금조금 양다리 거치지 말고 우리는 편을 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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