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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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 2천년 교회 역사로 풀어본다(3)
16세기 초에 종교개혁이 단행되었습니다. 평신도들이 읽지 못했던 성경이 번역되었고 오직 믿음으로의 구원관도 세워져 중세의 사제 독점주의가 깨진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루터와 칼빈 종교 개혁자들의 설교와 저작에도 영혼 구원, 즉 전도와 선교가 그렇게 강조되지는 않았습니다. 장로교 개혁자 칼빈의 제네바 역시 정교 분리가 안된 신정정치였으므로 누구를 전도한다는 것이 낯선 주제였습니다. 그래서 칼빈에게 있어서 교회는 당회와 노회, 곧 치리회가 중요했습니다. 교회의 핵심인 당회는 치리회로서 치리는 잘못한 사람을 징계한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교회 역사에서 영혼 구원하는 대사명을 다시 깨닫고 열심을 낸 것은 19C 때입니다. 18C 대서양 양쪽에 조나단 에드워드와 조지 휫필드의 횃불 같은 대각성 운동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천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대각성이 영혼 구원의 시작입니다. 다시 교회가 대사명을 자각하게 된 사건이 18C 대각성 운동입니다. 이 여파로 4세기 이후 잊혀진 영혼 구원의 대사명이 19C에 왔을 때 드디어 교회는 영혼 구원하는 선교 사명의 깃발을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국과 미국 교회가 아시아 아프리카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사들을 파송했습니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 인도로 간 영국의 윌리엄 캐리가 그때 비로소 나옵니다. 바로 그 열매로 한반도에도 19C 말 드디어 영국의 토마스 선교사가 중국을 거쳐 들어왔고, 드디어 1884년, 역사적으로 유명한 언더우드, 아펜셀러 선교사가 한반도에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100년이 넘게 한국교회가 전도하는 일을 중심으로 하여 이만큼 성장했습니다. 21C에 와서 우리 한국교회가 교회의 대사명을 부르짖는 가정교회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저희 교회에도 이 신약교회를 회복하는 운동이 전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정교회 운동에 동참하게 된 것에 대하여 큰 자부심과 무한한 확신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300년 동안 해왔던 그 교회다운 교회 모습을 이제 복원하는 운동에 참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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